* 트위터의 크롱님께 허락받고 글로 써봤습니다....후....ㅠㅠ...ㅠㅠㅠㅠㅠ
환절기가 되니 피부가 거칠어지고 입술이 갈라진다. 은찬이 립밤이 있는 코너로 가서 몇 개 뒤적거리다가 무색무취인 립밤을 하나 집어들었다. 무난하게 쓰기에도 괜찮고, 주머니에 넣어다니기 적당하고. 이걸로 할까, 마음을 먹은 은찬의 눈이 좀 더 밑으로 향했다. 딸기 모양이 그려져있는 립밤이 눈에 들어왔다. 은찬이 눈을 굴렸다. 새콤달콤한 딸기향을 생각하고 있으려니 중앙에 있을 청가람이 생각났다. 청가람과 딸기, 라니. 은찬이 생각에 잠겼다.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환절기니까, 하나 선물해줄까. 은찬이 딸기향 립밤도 하나 집어들었다. 가람이 이걸 바르면, 말을 할때마다 퐁퐁 작은 딸기들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눈앞에 선명히 그려지는 장면에 은찬이 웃음을 삼켰다.
Strawberry KISS
1.
그러니까 누가 저렇게 아침부터 여유를 부리고 있으랬나. 가람이 허둥대는 은찬을 보고 한심하다는 듯 눈썹을 들어올렸다. 악, 지각할까봐 재빠르게 가방을 메고 나가다 문에 이마를 박은 은찬이 소리를 질렀다. 어휴 저 멍청이.. 가람이 한숨을 푹 쉬었다. 이미 백건은 5분 전에 먼저 학교로 떠난 참이었다. 가람의 한숨소리에 은찬이 이마를 문지르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다 아, 하고 생각난게 있다는 듯 가람에게로 걸어온다.
"가람아, 손 좀."
"왜? 너 지각 아냐?"
가람이 물어보면서도 착실히 은찬의 말을 따라 손을 내밀었다. 토옥, 은찬의 손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이게 뭐지? 가람이 은찬이 준 것을 들어 쳐다보았다. 이거 뭐야? 입술에 바르는 거? 가람의 말에 은찬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너 써라. 주은찬이 왠일로...가람이 약간 감동을 먹으려 할 때였다. 립밤 옆면에 자리잡고 있는 딸기무늬를 발견하고서는 가람이 소리를 질렀다. 뭐, 뭐야. 근데 이거 딸기향이잖아?!
주은찬 돌았나봐, 가람이 질색하는 표정으로 은찬을 쳐다보았다. 남자보고 딸기향 립밤을 쓰라는 건 대체 무슨 심보지? 그런 질색하는 가람의 생각을 분명히 알아차렸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은찬은 계속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귀엽잖아, 왜 그래. 너한테 딱인 것 같아서 충동구매 해버렸어. 은찬의 입에서 술술 말이 흘러나올 때마다 가람의 얼굴은 점차 굳어가고 있었다. 저 놈의 입을 어떻게 막아야 할까... 주먹? 발길질? 아님 발차기? 니가 써 봐, 그런 말이 나오냐! 주은찬이 절 놀리는 게 확실하다고 마음을 굳힌 가람이 은찬의 얼굴에 딸기향 립밤을 내던지고 구박을 하려던 참이었다.
왜 그런 반응이야, 주은찬이 자신의 손에서 립밤을 자연스럽게 가져가서 바르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난 쓰는데, 은찬이 가람에게 다시 립밤을 건네주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간접 키스도...."
응? 가람의 머릿속이 약간 정지되었다가 펑 타올랐다. 무무무무슨말을 저렇게, 괜시리 민망해지는 기분에 가람이 고개를 홱 돌렸다. 뒤에서는 주은찬의 말이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잘 써라. ...그리고,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래. 우리 한지붕 아래서 살고 있는데 아직 키스 정도 뿐이잖아. 저거 진짜 미쳤나봐! 아침부터 민망스러운 말들을 뱉어내는 은찬의 목소리에 가람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닥치고 제발 학교 좀 가! 가람이 은찬에게 윽박질렀다. 은찬이 피식 웃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왜저래, 내가 아침밥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상한 걸 타서 먹였나? 가람이 기억을 더듬어 곰곰히 생각했지만 밥은 평소와 똑같았었다. 저 부끄러움도 모르는 놈 같으니. 가람이 부들부들 떨었다. 뻔뻔함과 느끼함만 늘었어 진짜. 정작 부끄러운 말을 내뱉은 주은찬보다 들은 자신이 더 부끄러워서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그건 그렇고.. 가람이 손에 쥐여진 립밤을 바라보았다.
2.
이거, 진짜 무슨 의미지.
설거지와 집안일을 좀 하고 나서, 자유시간이 생겼을 때 청가람은 방구석에 혼자 들어앉아 약 한시간가량 립밤을 곰곰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바닥에 오도카니 서 있는 립밤을 뚫어지게 쳐다봐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주은찬이 진짜 이걸 나한테 아무런 의미도 없이 준 건가? 그냥 단순히 환절기라서 입술이 틀지도 모르니까 쓰라고?
정답이었다. 은찬은 그저 순전히 그런 의도로 준 것이었지만. 가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끄으응, 가람이 팔짱을 낀 채 립밤을 노려보았다. 뭔가 더 있을 것만 같다. 간접 키스니, 한지붕 아래에서 살고 있는데 아직 키스 뿐이라느니 덧붙여진 말들을 생각하자면 더더욱 그랬다. 그래, 혼자서 이렇게 생각해봤자 답이 나오겠어? 가람이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검색창에 무언가를 써넣었다. '남자친구 립밤 의미'. 엔터를 누르자 무언가가 나오긴 했지만 가람이 원하는 답은 하나도 없었다. 이건 아닌데. 진짜 뭐지? 검색어를 바꾸어서 몇 번 더 찾아보던 가람이 결국 포기하고 컴퓨터를 껐다. 가람이 립밤을 집어들고 뚜껑을 열었다. 화악, 뚜껑을 열자마자 새콤달콤한 딸기향이 풍겨나왔다.
"음...."
코를 가까이 대서 향기를 맡은 가람이 찜찜한 얼굴로 뚜껑을 닫았다. 아침에 이걸 바르고 나갔던 은찬의 얼굴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그냥 쓰기에는 좀 찜찜한데... 물어볼 사람 없나. 가람이 고개를 들었다. 때마침 매화장에서 아침수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현우의 모습이 들어왔다. 야! 가람이 현우를 불렀다. 잠깐 이리 와봐. 헝클어진 머리칼을 대충 쓸어올린 현우가 가람이 손짓하자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앞까지 다가왔다.
"왜 불렀습니까?"
"물어볼 게 있어서."
"무엇을요?"
현우의 물음에 가람이 잠시 고민했다. 딸기향 립밤, 에 대한 걸 입 밖으로 꺼내자니 왠지 낯부끄럽고 지는 기분이다. 그것을 받은 게 자신임을 밝히면 더더욱 그렇다. 다른 사람 이야기처럼 꾸며내서 말해야겠어. 속으로 결론내린 가람이 입을 열었다.
"지금, 내가 한 커뮤니티에서 본 건데."
남자친구한데 립밤을 선물로 받았다는 거야. 딸기향이 잘 어울려서 준 거라고, 그러는데. 그냥 단순히 환절기라서 립밤을 선물로 준 건 아닌 것 같대. 무슨 의미냐고 물어보는데, 넌 무슨 의미 같아 보여? 가람의 질문에 현우가 미간을 찡그렸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그냥 쓰라고 준 거겠죠. 현우의 말에 가람이 빽 소리를 지른다. 아니래잖아! 쨍 하고 울리는 가람의 목소리에 현우가 조금 더 생각했다. 남자친구가 딸기를 좋아하나 보죠. 립밤이 그, 입술에 바르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향기가 날 테고. 그럼 뽀뽀할 때 더 기분좋으려고?
흐음, 꽤 믿음이 가는데. 그랬던 건가? 가람이 속으로 주은찬을 씹었다. 그랬단 말이지, 주은찬. 내 입술이 별로라서 딸기향을 치덕치덕 발라서 그거로 버티려고 했던 거야? 망할 놈 같으니. 전혀 아니었지만, 가람은 이미 그렇게 단정지어가는 중이었다. 현우가 가람을 바라보았다. 그게 끝입니까? 뭐 더 없어요? 현우의 목소리에 가람이 잠시 주은찬을 씹고 뜯고 맛보던 생각속에서 깨어났다. 아, 그러고보니까 주은찬이 하나 더 말한 게 있긴 했다. 가람이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니, 하나 더 있었어. 그게 뭐냐면...
"'아직 키스까지밖에 못했잖아?'라는 말을 했대."
그 립밤을 손에 쥐어주면서 말이야. 가람의 말에 현우가 으음! 하고 놀라는 소리를 냈다. 뭐야뭐야? 뭔가를 아는 듯한 현우의 반응에 가람이 재빨리 달려들었다. 공자, 그걸 미리 말씀해 주셨어야죠. 쉽네요 그건. 현우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키스까지밖에 못했다는 의미는, 앞으로 더 많은 것을 하고 싶다는 의미를 담고 있죠. 현우가 손가락을 까닥까닥 흔들었다. 그리고 립밤을 쥐어주면서 그 말을 했다는 건... 현우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꿀꺽, 중요한 말이 나올거라는 직감에 가람이 침을 삼킨 채 현우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진도를 더 빼고 싶으면, 그 립밤을 바르라는 의미죠."
세상에. 가람의 손에서 딸기향 립밤이 바닥으로 투욱 떨어졌다. 그런 의미였어 주은찬? 부끄러움에 심장이 쿵쾅쿵쾅 널뛰기를 해댔다. 머리가 새하얗다. 아침에 들었던 주은찬의 목소리만이 재생되고, 얼굴에 열이 확확 오르고. 그러느라 현우의 말을 듣지 못했다. 아, 하지만 전 잘 모르니까. 낭자분이 직접 묻는 게 제일 확실할거라고 생각합니다만.
3.
주은찬은 생각보다 적극적이고, 생각보다 더 많이 ㅂ....속에 음흉한 뱀을 키우고 있어.
가람이 수련복으로 갈아입는 주은찬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자신에게로 고개를 돌리는 은찬의 시선과 마주칠세라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응? 은찬이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저건 분명히 피한거다. 청가람, 왜 시선 피해? 은찬의 목소리에 가람이 도로 고개를 돌려 은찬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가장하며 톡 쏘아뱉었다.
"누가 시선 피했다고 그래?"
"방금 그랬잖아."
"착각이야, 착각."
내가 뭐가 무서워서 널 피해? 무서워? 은찬이 가람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진다. 내가 무서워? 놀리는 듯한 은찬의 말에 가람이 인상을 팍 썼다. 너, 또 말꼬리 잡지. 저녁 굶고 싶어? 밥 하는 자의 특권에 은찬이 곧바로 꼬리를 내린다. 아니야 가람아, 내가 언제 그랬다고. 순둥해진 얼굴로 돌아오는 은찬을 보고 있던 가람이 콧방귀를 끼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덥석, 은찬이 가람의 팔을 잡았다. 가기 전에 뽀뽀 안 해줘? 저게 뭐래. 미쳤나? 가람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볼에 쪽 하고 입술이 닿아왔다.
"이따가 맛있는 거 해줘, 기대할게?"
주은찬이 매화장으로 향하며 말하는 목소리가 날아온다. 누가 해준대? 가람이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은찬의 뒤에다가 가운뎃손가락을 날려보낸 가람이 문득 손을 내리고 생각에 잠겼다. 아, 저 녀석 진짜 내가 그 립밤을 바르기를 기대하는 건가? 가람이 볼을 무의식적으로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평소에는 입술에 해줬었는데, 지금은 볼에 해줬다. 정말, 그런 건가. 가람이 양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직은 준비가 안 됐는데.... 으으으, 모르겠다.
주은찬은 자신에게 립밤을 선물해 준 뒤로는 단 한번도 그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내가 준거 왜 안 발라, 준 사람 민망하게, 같은 말도 전혀. 하지만 그래서 더 신경이 쓰였다. 같이 앉아서 저녁을 먹을 때 간간히 마주치는 은찬의 검은 눈동자는 자신이 립밤을 바르기만 기대하고 있는 것 같은 눈동자였다. 학교가기 전에 인사를 하는 것도, 학교를 마치고 와서 귓가에 속삭여주는 말에도, 수련을 하기 전에 건네는 말에도, 하나하나가 다 그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아서. 마치,
'네가 준비되길 기다릴게, 마음먹으면 나에게 모든 것을 허락해줘.'
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가람이 고민했다. 그래, 주은찬도 남자고 나도 남자고. 솔직히 말해서 그러고 싶은 생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신중해야 될 것같아서 계속 고민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따지고보면 주은찬이랑 사귀게 된 지도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진도가 너무 안 나가고 있기는 한 것 같고.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가람이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방 한구석에서 얌전하게 놓여있는 딸기향 립밤이 눈에 들어온다.
4.
왜 가람이가 몰래 여기로 나오라고 했을까, 이제 날씨 쌀쌀해져서 좀 추운데. 은찬이 발끝으로 땅을 비비적거리면서 청가람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시각이 늦어서 그런지 조금 눈이 무거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몇 분쯤 더 기다렸을까, 저 쪽에서 한 인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청가람인가. 은찬이 고개를 들었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달빛에 모습이 드러났다. 생각했던대로 청가람이 맞았다. 왠지 약간 망설이는 듯, 조금 불안해 보였지만 말이다. 가람이 은찬의 앞에 섰다. 가람아. 은찬이 가람의 이름을 불렀다.
"왜 부른 거야?"
뭐 할 말 있어? 은찬의 말에 가람이 주먹을 살짝 쥐었다. 그 이후로 생각하고 생각해서 결국 내린 결정이다. 주은찬에게 오늘 밤에 매화장으로 나오라고 미리 언질을 주고, 만나기 바로 좀 전에 딸기향 립밤을 바르고 나왔다. 너무 달콤해서 바르는 순간 입술이 녹아버리는 것 같았지만, 그보다는 이 시각 이후에 이어질 새로운 경험들에 더 심장이 떨렸다.
주은찬. 가람이 은찬의 눈앞에 바로 얼굴을 들이댔다. 어, 어? 은찬이 움찔 하며 몸을 뒤로 빼려다가, 옅게 느껴지는 딸기향에 눈을 크게 떴다. 이거, 전에 내가 준 거 립밤이잖아? 가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찬이 좋아했다. 통 안바르는 것 같았는데, 잘 바르고 있었네? 가람이 입을 열었다. 큰 마음먹고 바르고 나온 거야, 오늘. 청가람이 말할 때마다 딸기향이 옅게 피어올랐다. 예전에 생각했었던 대로, 가람이 입을 열 때마다 딸기가 주변에서 몽글몽글 튀어나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귀엽다, 은찬이 생각했다. 근데 뭐? 그거 하나 바르는 데 큰 마음을 먹을 것 까지야.... 하는 생각과 동시에, 가람의 입술이 확 맞닿았다.
왜, 왜 청가람이 먼저 키스해주지? 은찬의 머릿속에서 큰 물음표가 두둥실 떠올랐지만, 해주는 것을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은찬이 가람의 허리를 잡고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쌀쌀했던 밤공기가 금세 달아올랐다. 하아, 은찬이 입술을 살며시 떼었다. 벅차서 숨을 제대로 들이쉬지 못했던 가람이 급하게 숨을 들이쉬며 감았던 눈을 떴다. 은찬이 혀로 입술을 핥았다. 와, 가람아...
"네 입술...진짜 맛있다."
립밤 때문에 더 그런 건가? 은찬이 가람의 귀에다 속삭였다. 간지러운 느낌에 가람이 몸을 움츠렸다. 연이어서 의문기가 섞인 은찬의 말도 들려온다. 그런데 왜 먼저 키스해준거야? 평소에는 잘 해주지도 않고, 요새는 나 피해다니는 것 같아서, 난 네가 나 싫어진 줄 알았어. 그래서 지금 불러낸 것도 그런 건가, 해서 걱정했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음?"
작아지는 가람의 말에 은찬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무슨 생각? 가람이 우물쭈물댔다. 그...그... 그 뭐? 은찬이 부드럽게 물었다. 가람이 눈을 질끈 감은 채 말을 끝냈다. 네 말에 답해줄 용기가 필요했어! 어둠속인데도 청가람의 얼굴이 달아올라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말? 은찬이 기억을 더듬었다. 내가 가람이한테 뭐 부탁했었나? 그게 뭐지? 먼저 키스해달라고 했나? 아닌데. 사실 그건 받아보고 싶었긴 한데, 해달라고 말한 적은 없었다. 그럼 뭐지? 다른 걸 생각해봐도 도무지 지금 청가람의 반응과 이어지지 않아서, 은찬이 결국 포기하고 물었다.
그런데, 내가 뭐라고 했는데...? 가람이 이를 아득 깨물고는 대답했다. 씨, 니가 립밤 줬잖아! 그거 바르고 나오라며! 그...그....! 표정이 하나도 바뀌지 않는 은찬을 보고 가람이 삿대질했다.
"나랑 키스밖에 못해서 욕구불만이라며!"
그런 말 한 적 없다.
"더 하고 싶은데 내가 안해줘서 삐진 거라며!!"
그런 말은 더더욱 한 적 없다.
"그래서, 진도 더 빼고 싶은데, 그런 네 생각에 동의하면 립밤 바르고 나오라고 나한테 준 거 잖아!"
아니다. .....응?
은찬이 순간 드는 생각에 가람을 쳐다보았다. 씩씩거리는 청가람, 꼭 깨물고 있는 입술. 자신이 말을 내뱉고선 어쩔 줄 몰라하며 시뻘겋게 달아올라있는 얼굴이 눈에 띈다. 은찬이 참지 못하고 풋, 하고 웃음을 내뱉었다. 웃어?! 가람의 눈꼬리가 확 올라갔다. 내가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결정내린 건데, 웃어? 그래 내가 곧이곧대로 해준 내가 바보지, 가람이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주은찬에게 거부당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내가....내가...너랑.... 눈앞이 일렁거린다. 그리고 그 순간, 뒤에서 은찬이 확 껴안아왔다. 하, 청가람.
"귀여워 죽겠다. 그런 의미로 바른 거였어? 그동안은 그래서 나랑 시선도 잘 안 마주치고, 립밤 바르지도 않은 거였어?"
이거 놔, 가람이 은찬의 팔을 떼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곧이어 들려오는 주은찬의 말에, 이번에는 몰려오는 엄청난 민망함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난 그냥, 단순히 입술 트지 말라고 준 건데. 넌 그런 의미로 받아들였구나....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해석한 거야?
주은찬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여 있다. 현우 놈 죽여버릴 거야. 가람이 애꿎은 현우에게로 칼날을 돌렸다. 이 뜻이 아니였잖아, 멍청아! 그냥 단순히 준 거잖아! 난 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거지, 민망하게 왜 주은찬을 불러내서 키스하고. 가람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진짜 부끄럽다. 어딘가로 빨리 사라지고 싶은데, 주은찬이 놔주지 않는다. 가람아, 귀엽다. 그런 목소리도 민망하다고. 그런데, 가람아. 은찬의 목소리가 조용한 공기를 갈랐다.
"나야, 단순한 의미로 준 거지만. 네 말을 들어보니까.."
은찬이 가람의 목에 입을 맞췄다. 헉, 목에 닿는 부드럽고도 야릇한 감촉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가람이 움칠 떠는 것을 알고도 은찬이 말을 이어갔다. 진도를 좀 더 빼도 된다고 허락해준 의미 같은데. 은찬이 가람의 귀를 깨물었다. 아, 가람이 짧게 신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재빨리 부정했다. 아냐, 니가 아니었다고 하니까 나도 아니.....! 은찬이 손으로 가람의 입을 막았다. 읍, 귀를 잘근잘근 씹는 감각에 신음이 주은찬의 손 안에서 덧없이 사라진다. 가람의 귀를 깨물다가 한 번 핥고 떨어진 은찬이 속삭였다.
"가게로 가자."
가람이 네 기대에 부응해줘야지. 은찬이 낮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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