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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가람

[찬가람] 뜻밖의 차가운 비가 아침부터 계속 내리고 있었다,로 시작하는 글쓰기

뜻밖의 차가운 비가 아침부터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산이 없었다. 우리는 고개를 들어 서로의 얼굴을 멍청하게 쳐다보았다. 야, 너도 안 가져왔어? 지각해서 뛰어오느라.. 망했네. 시덥잖은 대화들이 오갔다. 청소당번이었던 터라, 우산을 빌릴 만한 같은 반 친구 녀석들은 이미 다 하교를 한 지 오래였다.



"그냥 뛰어갈까?"

"다 맞고 싶어서 작정했냐."



청가람이 어이없다는 듯 쏘아붙였다. 나는 하릴없이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았다. 운동장은 개미 새끼 하나 얼씬대지 않게 텅 비어있었다. 회색빛 하늘은 언제쯤 푸른 색으로 돌아올지도 의문이었다. 일기예보에 비가 언제쯤 그친다고 했더라. 생각해봐도 기억나지가 않았다. 청가람이 한숨을 쉬고 다시 안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어디 가?"

"비가 좀 그칠 때까지 기다리는게 낫지 않겠어?"



최소한 비가 좀 잦아들어야 갈 수 있을 거 아냐. 청가람이 고개를 까닥였다. 나는 여전히 주륵주륵 비가 내리는 밖을 한 번, 나를 바라보는 청가람을 한 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청가람의 뒤를 쫓아갔다.


학교 안은 무척이나 조용해서 고요한 복도 안에는 우리 둘만의 발걸음 소리가 크게 들렸다. 애들이 북적북적하고 시끄러운 학교 모습만을 보아왔지, 이렇게 조용한 학교는 좀 생소한지라 마치 학교를 탐험한 것 같은 기분을 받았다. 빈 교실들을 건너, 계단을 한 층 더 올라가 우리들의 교실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어? 너희들 왜 다시 오니?"



담임 선생이었다. 왜 집에 가지 않구. 나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밖에 계속 비가 와서요, 조금 잦아질때까지 기다리려고요. 내 말을 듣고 담임 선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하루종일 비 온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혹시 필요하면 선생님이 우산 빌려줄까? 나는 그 말을 듣고 슬쩍 청가람의 눈치를 살폈다. 청가람은 약간 불편한 표정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저희가 알아서 갈게요."

"그래? 알았다. 그럼, 잘 가렴."



선생을 그렇게 보낸 우리들은 빈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가방을 내려놓고 창가 옆에서 비가 떨어지는 밖을 내다보고 있자 청가람도 내가 앉아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내 앞에 앉은 청가람을 바라보았다. 불그스레한 끼가 도는 하얀 피부, 오똑한 코, 크고 붉은 눈. 여자애마냥 고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가 돌아보는 청가람과 눈이 마주쳤다. 괜히 찔린 나는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왜 선생님이 우산 빌려준다고 한 거 거절했어?"

"...그냥."

"그냥?"



되물어보아도 청가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뭔가 숨긴 말이 있는 것 같은 느낌에 나는 청가람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으나 뭘 봐, 하고 퉁명스럽게 들려오는 소리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뭔가 있는데. 청가람은 내가 하는 행동 그대로 턱을 괴고 바깥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결국 질렸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교실 안을 천천히 가로지르는 청가람의 뒷모습을 눈으로 따라갔다. 청가람은 칠판 앞에서 분필을 뒤적거리다가, 괜히 교탁 안을 살펴보다가 이번에는 청소도구함으로 다가갔다. 아무런 의미 없이 한 번 열고닫은 후, 청가람은 사물함 앞으로 걸어갔다. 탕. 탕. 탕. 발로 사물함을 열어본 후 무심하게 발로 닫는 행동에 사물함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뭐해, 시끄럽게."



내 불만은 듣지도 않는 건지 기어코 맨 밑줄을 모두 열고 닫은 청가람은 그 윗줄을 하나 열었다. 나는 청가람이 사물함 속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을 똑같이 빤히 바라봐주었다. 저 사물함은 내 사물함이었다. 다른 사물함과 다른 것 하나 없는데 저렇게 한참동안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는 게 웃겼다. 뭐해? 이번에도 청가람은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허리를 살짝 굽혀 내 사물함 안으로 손을 뒤적거렸다. 다른애들처럼 사물함 안은 정리도 안 하고 체육복과 교과서들 그리고 가끔은 다 먹은 빵 봉지도 구겨져넣어 있을 것이라, 바로 손을 빼며 왜 이렇게 더럽게 사냐는 말이 날아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다시 허리를 핀 청가람의 손에는 편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거 뭐야?"


청가람이 사물함 문을 닫고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호기심이 동한 내가 툭 던졌다. 청가람은 편지를 앞뒤로 살펴보더니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뭔가 상당히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고백편지인가보지."



내 앞에 편지를 던지듯이 내려놓은 청가람은 굳이 짜증난 기색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여자애들은 눈깔이 삐었나봐, 어딜봐서 얘를 좋아할 데가 있는 거지. 못생긴 멍청이에다가 정리도 제대로 하지 않는 귀찮은 녀석일 뿐인데. 야아, 가람아 그건 좀 심하지않니... 허허 웃으면서 내 혹평을 조금이라도 돌려놓기 위해 건의했으나 청가람은 내 말을 무시했다.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 청가람은 내가 편지를 집어드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분홍색 편지에다가 겉에는 은찬이에게, 라고만 써져 있는 아기자기한 글씨. 몇 번간의 경험을 통해 미처 내게 직접 만나서 고백할 용기가 없는 여학생이 편지를 써서 넣어둔 거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나는 편지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청가람의 표정을 살폈다. 불편한 기색과 꿈틀거리는 눈썹. 내가 계속 편지를 만지작거리고만 하고 뜯을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결국 먼저 인내심이 바닥난 청가람이 말을 꺼냈다.



"야, 안 뜯어?"

"뭘?"

"그 편지 말이야. 계속 만지작거리기만 할 거냐고."


청가람이 연이어서 빈정댔다. 아, 너무나도 소중해서 함부로 열어보지도 못하겠다 이 말인가? 피식 비웃는 얼굴은, 그래 솔직히 말한다. 좀 귀여웠다. 그 청가람이 유치한 어린애가 되어서 저렇게 툴툴거리는 게 귀여웠다. 나는 조금만 더 골려줄까 하다가 그러면 청가람이 정말로 삐질까봐 그만두기로 했다. 그 대신, 받은 편지는 읽지도 않은 채 깔끔히 반으로 접어버렸다. 내가 편지를 읽지도 않고 접어버리는 것을 보자 청가람은 조금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묘해지는 청가람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아예 편지를 구겨버렸다. 이 편지를 쓴 아이에게는 정말 미안했지만. 청가람은 편지를 구겨버리는 날 보면서 더욱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왜 구겨?"

"필요가 없으니까."

"그거 쓴 애에게 미안하지도 않냐."


방금전까지만 해도 내가 편지를 읽지 않기를 기대했으면서, 읽지도 않고 구겨버리자 하는 말이었다. 타박하는 것 같지만, 청가람 너 안도한 표정 얼굴에 다 티나거든? 나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내 행동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쓰는 청가람이 너무 귀여웠지만, 웃어버리면 화내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간간히 비져나오는 웃음을 달고서, 대답했다.


"네가 있는데 어쩔 수 없지."

"무슨 소리?"

"질투한거야?"

"아니거든, 멍청아."



청가람이 즉시 되받아쳤지만 그저 하하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질투한게 아니면 왜 네 귀는 빨개지는 건데. 내가 웃고만 있자 작은 주먹이 내 머리 위로 날아왔다. 손은 조그마한데 대체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할 정도로 주먹은 아팠다. 악, 강렬하게 날아온 타격에 머리를 싸맨 채 아픔을 호소하자 청가람은


"잘 됐다, 나불대더니."



하고 고소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앞에서 별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느끼고 있던 나는 어느정도 아픔이 가라앉자 어느새 교실을 나가고 있는 청가람의 뒤를 쫓아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밖에는 비가 오고 있는데 어딜 가는 건지 모르겠다. 어디 가려고. 비 좀 적게 오는 것 같지 않아? 그 말에 나는 창문으로 다가가서 바깥을 쳐다보았는데, 과연 빗줄기가 조금 약해진 게 보였다. 그래도 우산 없이 갈 정도만큼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가면 다 맞을 정도의 비 아니야? 하고 묻는 내 말에, 청가람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비가 그칠때까지 기다리려면 밤늦게까지 학교 안에서 기다려야 할 판이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담임 선생이 우산을 빌려준다고 했을 때 그냥 쓰고 갈 걸 그랬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슬쩍 청가람의 눈치를 살폈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눈빛이었다.


청가람은 입을 다물고 있으면 가히 신비스러움의 극치를 달리는 아리따운 전설의 미녀쯤 되보이곤 했었는데, 생긴 것과 다르게 행동과 말은 좀 거칠어서 좀 이중인격자 같기도 했다. 비오는 날 이 시각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학생은 우리 둘밖에 없어서인지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건 청가람도 마찬가지인듯 했다. 흘끗 나와 눈을 마주치고서는 바로 고개를 돌려버렸으니까. 갑자기 걸음을 빨리 해서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나는 재빨리 쫓아내려갔다. 분명히 걷고 있는데 거의 달리는 수준이었다. 경쟁심이 붙은 우리는 빠르게 걸어내려가다가, 나중에는 깔깔거리면서 온통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뛰어내려갔다. 이정도로 달리면 시끄럽다고 제재하러 등장할 선생님마저도 없었으니까, 우리는 현관까지 아슬아슬한 달리기를 시작했다. 나보다 조금 앞서서 달려가는 청가람의 모습이 더없이 싱그러웠다. 나는 손을 뻗었다. 잡힐 듯 말듯, 가까운 거리였다. 저 앞에서 중앙 현관이 보이기 시작했다. 청가람이 중앙 현관을 나서기 바로 직전, 나는 청가람의 어깨를 낚아챘다.



"잡았,다."



균형을 잃고 미끄러지려던 청가람을 확 끌어안은 나는 헉헉대는 청가람을 바라보았다. 꽤 오랫동안 뛰어서 그런지 숨이 가빴다. 청가람의 하얀 피부도 조금 불그스레해져 있었다. 한동안 우리는 말 없이 숨을 고르고 있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는 소리만이 들렸다. 숨이 잦아들자, 청가람이 내 손을 걷어내고는 똑바로 섰다.



"아직도 오네."



청가람이 중얼거렸다. 그것은 극명한 사실이었으므로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청가람을 따라 비내리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탁탁 거리는 소리가 일정하게 들렸다. 청가람이 발로 바닥을 쳐대고 있었다. 안 그칠 것 같은데, 그냥 갈래? 지금껏 학교에서 기다렸던 게 말짱 꽝이 되는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물었다. 별다른 도리도 없고 말이야. 청가람이 나를 돌아보았다. 홍옥같은 붉은 두 눈이 깜박이며 날 바라보았다. 청가람은 그렇게 나를 한 번, 비 오는 바깥 풍경을 한 번, 다시 나를 한 번 바라보더니 순간 급작스럽게 가까이 다가왔다. 서로의 입술이 맞닿은 온기가 느껴질 정도로. 청가람이 내게 키스하더니, 재빨리 떨어졌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빗 속으로 뛰어갔다. 타다닥, 청가람이 뛰어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나는 바보처럼 몇 초 동안을 굳어 있다가 하하 웃어버리고 말았다.


"진짜....."



자기가 먼저 키스해놓고서는 도망가는 모습이 귀여웠다. 나도 빗속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나가자마자 달려드는 비가 차가웠지만 기분은 마냥 좋았다. 저 앞에서 그 자리에 멈추어 선 채 날 기다리다가 내가 뛰어가자, 혀를 낼름 내민 채 다시 몸을 돌려 도망가는 청가람의 뒤를 다시 잡기 위해 2차 추격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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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님과 같은 문장으로 글쓰기 해본거~! 짱 저렴하게 싸봤따

처음에 저 문장을 들었을 때는 우울하게 가려고 했었는데 씨스타 신곡 듣다보니 청게물로 급작스럽게 바꿈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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